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졸업전시 온라인 아카이브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Fine Arts
Senior Exhibition Online Archive




2023 -0-0-0- : 매듭은 손가락으로 지어졌다
24th Senior Exhibition  FINGER TIED KNOTS



2022 사이 그늘의 날들
23th Senior Exhibition    VACANCES


2021 안녕을 위한 베타테스트
22th Senior Exhibition    BETA TEST FOR AN-NYEONG


2020 크라운 샤이니스 
21th Senior   Exhibition   CROWN SHYNESS


2019 물은 피를 씻는다
20th Senior   Exhibition   WATER WASHES BL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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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자령 

ficciones0220@gmail.com
@jar0_hong


일렉트릭 위빙
Electric weaving

언젠가 한 친구가 영상 작업을 전시할 때 노트북, 빔프로젝터에 연결된 전선이나 멀티탭 등을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보이게 놔두었던 적이 있다. 나를 비롯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그 전선들을 패싱하고 작업만을 바라본 반면, 선생님께서는 이를 지적하시면서 “이런 것들을 보이지 않게 해야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때 선생님과 학생들의 반응은 얼핏 다른 것처럼 보이나, 전선을 ‘시선이 가면 안 되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만은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전시를 함에 있어서 전기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전시장의 불을 밝히는 가장 기본적인 일부터, 기기를 작동시키고 작업을 재생시키는 일까지 전기가 없으면 전부 기능하지 못하는 것 투성이다. 하지만 전기를 끌어오는 전선은 눈에 띄면 안 되는 것, 작품에 갈 시선을 분산시키거나 방해되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듯하다.

이러한 전선의 미묘한 위치에 흥미를 느꼈고, 한편으로는 이공계 분야에서 여성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에니악의 여성들’ 생각이 났다. 제2차 세계대전, 탄도의 궤적을 계산하기 위해 개발된 컴퓨터 에니악은 건물 한 층 규모로 거대했고, 수많은 전선을 수작업으로 직접 연결해 작동시켜야만 했다. 이 에니악의 조작을 담당한 것은 6명의 여성이었다. 하지만 당시에 컴퓨터의 프로그래밍, 소프트웨어를 담당하는 일은 현대의 위상과는 다르게 중요한 일이라고 여겨지지 않아 주목받지 못했고, 여성이 하는 일이라 하여 적은 임금을 받으며 무시됐다. 그렇게 에니악의 여성들을 비롯해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여성은 차츰 보이지 않게 된다.

오늘날 이공계 분야의 대표처럼 여겨지는 프로그래밍(코딩)의 기원은 실을 천으로 만드는 방직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유래한다. 코드를 ‘짠다(weave)’는 말이 현재까지 쓰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짜는 행위와 그 결과물들은, 오랜 기간 여성의 집안일이라고 여겨져 미술사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다가, 20세기에 들어서 그 가치를 재해석하는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이처럼 우리 삶, 사회를 지탱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존재이나 보이지 않던 것들, 주목받지 못하던 것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가시화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선 자체를 재료로 사용해 볼 수는 없을까?”라는 작은 호기심에서 출발하여, 매체와 직업군에 고착화된 성편견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전선은 기다란 선이라는 점에서 실과 형태적 유사성을 가지므로 이 매체를 섬유적인 관점에서 다뤄보고자 했다. 또한 현실에서 전기/ 전자공학이 극한의 남초 분야로 인식되고 있는 점을 고려했을 때, 뜨개질이나 직조같이 전통적으로 여성적이라고 인식되어 온 분야를 결합해 미술의 영역에서 이를 중화해 보고 싶었다.

전선은 금속 도체에 비닐이나 고무와 같은 부도체로 겉을 감싼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일반 섬유에 비해 강도가 세며 탄력이 적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때문에 뜨거나 짜는 행위를 할 때 오랜 시간이 걸리고 신체가(특히 손가락이) 쉽게 피로해진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 같은 불편함은 자연스럽게 전선의 특성과 규격에 맞는 도구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했고, 직접 도구를 제작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섬유 작업 이면에 흔히 알려진 뜨개바늘 이외에도 다양한 도구들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는데, 도구의 형태와 크기에 따라 작업물이 달라지고, 사람들이 원하는 작업물을 얻기 위해 도구를 수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구 자체도 제작자의 창의성과 감각이 반영되는 조형물처럼 느껴졌다. 일반적으로 어떤 도구로 만든 결과물을 작품, 작업으로 취급하고 도구는 수단으로써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측면에서는 도구도 전선과 비슷한 위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이번 작업에서는 직접 제작한 도구와 그것으로 만든 전선 작업물을 함께 보여주고자 했다.







니팅룸(knitting loom), 2023, 전선, 나무, 황동, 가변설치, 가변크기




니팅룸 / 위빙룸 / 실타래




손끝으로부터, 2023, 철에 전선, 가변설치, 45×14×30cm




실타래, 2023, 철에 전선, 가변설치, 19×19×15.5cm, 32×32×26cm




연결, 2023, 유리, 나무, led바, 가변설치, 15×4.5×3cm, 20.8×4.5×3cm




위빙룸(weaving loom), 2023, 전선, 나무, 황동, 가변설치, 가변크기




전주곡(電柱曲), 2023, 나무에 금속 재료, 전선, 가변설치, 35×50×38cm




핀룸(pin loom), 2023, 전선, 나무, 황동, 가변설치, 50×50×35cm




전시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