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졸업전시 온라인 아카이브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Fine Arts
Senior Exhibition Online Archive




2023 -0-0-0- : 매듭은 손가락으로 지어졌다
24th Senior Exhibition  FINGER TIED KNOTS



2022 사이 그늘의 날들
23th Senior Exhibition    VACANCES


2021 안녕을 위한 베타테스트
22th Senior Exhibition    BETA TEST FOR AN-NYEONG


2020 크라운 샤이니스 
21th Senior   Exhibition   CROWN SHYNESS


2019 물은 피를 씻는다
20th Senior   Exhibition   WATER WASHES BL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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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근 

seokgeun.yoo@gmail.com


 전래동화나 판타지 영화 속에서 어리석고 비열한 악당, 혹은 지혜롭고 자비로운 현자로 묘사되곤 하는 거인은 그 눈이 ‘땅과 멀고 하늘과 멀어서’, 무엇에도 포함될 수 없음과 동시에 무엇에도 포함될 수 있는 자아의 모순을 겪는다. 거인의 이중적 상태는 언제나 그의 위치를 ‘표준’의 외부로 이동시키고, 이렇듯 세계에 내재하여 있는 사라질 수 없는 구분들과 ‘사물화된 이데올로기’는 거인이 타자로서 겪는 비극의 원인을 제공한다. 거인은 자신의 물리적 역량을 드러내지 않으며, 언제나 적극적으로 ‘듣는’ 태도로 타자의 부름에 응답함으로써 구분에 의한 배척의 불합리함에 대응한다.

영화의 문법을 충실히 이행하는 클립들 사이로 이질적 리듬의 이미지들이 출현한다. 이때 영상 바깥에 존재하는 퍼포머들은 물리적 통로를 거쳐 영상의 내부로 침입하거나, ‘그때 그들이 서 있는 자리’에 누워 허공의 나뭇가지 위로 손가락을 맞대보며 한쪽 벽면을 비추는 2.35 : 1 프레임 속 이미지를 현장에 흩어져 있는 퍼포머들의 시선으로 이탈-분산시킨다.

영상 속 네러티브의 분절된 시간은 영상 이후 퍼포먼스를 경유하며 유예-지연이 가능해지고, 퍼포머들의 역할이 즉각적으로 전환되며 인물들 간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순간은 퍼포먼스가 영상의 시간과 소리의 도움을 빌렸을 때 더욱 명확히 드러날 수 있다. <거인>을 구성하는 각 매체와 인물들은 서로를 터치(touch), 언제나 역전될 수 있는 가능성이자 상호가 존재하기 위한 필연적 전제 조건이 되며, 이들의 종합은 위반을 옹호하고, 재현을 거부하는 <거인>의 이중적 상태를 긍정한다.

<거인: vol.1>에서 인물들 간의 역할 구분이 모호해지며 발생하는 분별 불가능성은 구분에 의해 발생하는 ‘이미지-위치’, 질서 체계의 임시적이고 가변적인 속성과 그것의 와해를 암시하며 이를 자축하는 축제적 분위기를 띠지만 이내 처형장의 풍경으로 돌아온다. <거인>이 vol.2로 이동하며 축제의 현장에는 처형장의 이미지가 섞여 들고, vol.1에서 그린 처형장의 마지막 순간에 울리던 비명과도 같은 소리에 맞춰 누군가 거인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A의 걸음처럼 느린 춤을 추기 시작할 때, 한 편에서는 별빛과 목소리, 숨소리와 같이 주체의 현존과 분리되어

분리되어 저편으로 반짝이는 것들을 쫓아 꿈틀거린다. 배우들은 무대에 있지 않고, 무대의 환영으로서 그곳에 있는 무대 위에서는 어떤 극적인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다. 배우와 오브제는 존재론적 더블(double)이 되어 극장이자 ‘극장이 아닌 곳’ 여기저기를 오가며 무대의 질서와 극의 공식을 위반한다. 관객과 배우의 위치는 구분되지 않고, 그들은 모두 같은 곳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휘발되는 안무와 스크린 내부의 시간, 실재와 실재의 환영 사이 어딘가에 머물며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사건과 사건의 징후들을 파편적으로 경험한다. 이렇듯 <거인>은 대립하는 이미지가 서로에 스며들어 도래하게 될 혼돈의 순간을 지지하는 무법적 총체로 다시 변주된다.

거인의 걸음과 A의 걸음이 교차할 때, 서로의 속도가 접촉하고 뒤섞이며 시간의 자기 분열적 속성이 발각된다. 거울에 둘러싸인 ‘신들린 한 쌍의 춤꾼’은 그곳을 감시체계이자 에로스적인 이중적 장소로 탈바꿈한다. vol.1에서 그들이 돌을 매개로 타액을 교환하여 서로에 겹치듯,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몰아쉬는 거친 숨들을 교환한다. 대립과 고유성이 중지되는 카니발적 시간은 이 순간에 비롯하여 다시 만개한다. 그들은 극장이 아닌 곳에서 죽고, 음색도, 음계도, 기호 작용도 없는 목소리와 숨소리를 가늘게 발화하며 끝내 죽음을 연기하는 산-죽음의 이미지를 배회한다.

“몸들의-사이는 ‘이것 자체가 있다’라는 확장, 즉 그에 의해 몸들이 서로 드러나게 되는 자리의 실재성 외에 아무것도 보유하지 않는다. 몸들의-사이는 곧 그것들의 이미지들의 발생이다. 이미지는 유사성이 아니다. 환영이나 공상은 더더욱 아니다. 이미지란 몸들이 서로에게 제공되는 방식이자 세계로 도래하는 것, 경계변에 이르는 것, 그리하여 경계와 섬광에 영광을 부여하는 방법이다. 하나의 몸은 다른 몸들에게 제공되는 하나의 이미지이자, 몸에서 몸으로 뻗어가는 무수한 이미지의 코르푸스 전체, 그러니까 색깔들, 국지적인 그림자들, 편린들, 낟알들, 작은 자리들, 초승달들, 손톱들, 털들, 힘줄들, 두개골들, 갈비뼈들, 골반들, 복부들, 관들, 거품, 눈물, 치아, 침, 틈새들, 덩어리들, 혀들, 땀, 액, 혈맥들, 고통과 쾌, 그리고 나, 그리고 너인 것이다.”1

1  <코르푸스>, 장-뤽 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