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오

kimjioh1014@gmail.com
@wldh1014

Enfolded 안긴, 접힌

수많은 질서가 접혀 들어가는 시간 속 버텨내는 것들을 모으고 싶었다. 버텨낸 것들을 단순히 사라짐을 넘어서 새로움을 생산하고 소화하는 현장으로 바라보았다.

홀로그램은 완전한 holo 이미지 gram 이다. 나는 홀로그램 암실 안에서 끊임없이 흔적을 남기는 벌레를 줍고 현상해왔다. 나에게 암실이란 비가시적인 상황으로,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동시에 모든 곳에 잠재해 있던 질서들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나 홀로그램 암실에서는 파동으로 이미지를 만들기에, 평소에 감각할 수 없던 진동 하나하나를 떠올릴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기 전, 마른 벌의 날개와 주운 파리 다리와 같이, 멈추었기에 주울 수 있었던 벌레들을 줍는다. 부서질 듯한 연약한 움직임 속 암실 안에서 잠재된 다른 기준의 질서를 떠올린다.

뉴미디어 매체의 희망과 함께 홀로그램 암실이 있어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홀로그램 암실이 이제 완전한 이미지를 얻을 수 없는 상태임을 인지하게 된다. 암실 안에서의 완전한 상태란 오로지 물체 파와 기준파만 남겨진 무진동 상태이다. 안정시간으로 진정이 되지 않는 터질 듯한 소리와 함께 이상한 냄새도 계속 새어 나온다. 진동을 흡수하는 에어 테이블이 오히려 공기가 빠져나가고 현상실의 수도에서 구멍이 난 듯 물이 흘러나올 때, 더 이상 완전한 이미지 만들기는 불가해진다. 멈출 수 없는 진동의 발생지를 기록하다 암실의 구석에서 지난해 여름 주웠던 벌레들을 발견했다. 벌레들의 눈과 날개 구석구석 생긴 구멍 안에는 다른 껍질들로 가득했다. 서로를 파고들어 먹고 소화하고 소화불량이 되어 흔적을 남긴 또 다른 벌레들의 껍질이었다. 쇠퇴하고 유행이 지난 암실 안, 서로를 향한 저항할 수 없는 이끌림으로 가득한 벌레들을 주웠다. 그리고 이들에게서 새로움과 낢음의 경계선을 뒤섞는 순간을 발견했다.

나는 벌레와 함께 살아가며 일기를 적고 다른 기록자들의 일기를 함께 수집해왔다. 나의 일기는 집 청소를 하는 나를 보고 가사 상태에 빠진 오지(사슴벌레)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가사상태에 빠지지 않고 더듬이를 굴리며 나를 관찰하는 오지 일기로 이어진다. 사마귀 ‘쥐미’를 키우는 기록자의 일기도 수집해왔다. 이 일기 속 쥐미의 다리와 발 끝을 찍은 사진에 주목한다. 벌레의 발톱은 노화를 보여준다. 기록자들은 발톱이 떨어져 나가는 걸 막기 위해 각자의 방법을 찾고 기록한다. 그들은 발톱 두 개의 시간 연장을 위해 망을 씌워두고 발을 빨지 못하도록 입바람을 분다. 발이 말라 부서지면 이를 찾기 위해 흙을 체에 거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에도 발은 계속해서 말라가고 곤충은 자기의 발톱을 먹어버린다.

벌레 일기의 날짜와 암실 안을 기록한 영상 속 시계는 끊임없이 흘러간다. 하지만 서로를 소화시키고 또 소화불량이 되어 남아있는 것들은 낡음과 새로 생김의 경계선을 끊임없이 파고들어 지우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