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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오타쿠의 슬픔 (2020)
~세카이, 이미지의 소유 그리고 환상의 붓질쇼~


이 권태롭기 짝이 없는 세계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지만, 가상의 삶들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되기를 반복한다.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그리고 이미 셀 수 없이 사라져 온 세카이(世界, セカイ)[1]를 관망하고 향유하며 애도하는 행위들의 닫힌 원환. 그것이 해피하든 새드하든, 엔딩이 약속되어 있는 서브컬처 세계관의 유한함은 현실에서 쉬이 끝낼 수 없는 것들을 단칼에 잘라 내듯 사라지게 한다. 나아가 일개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이미지의 본질-이미지가 시스템 내에서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는 상태-을 소유하는 것 역시 가능케 한다. 서브컬처의 대표적 분야인 게임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가챠[2] 게임 속 데이터 파편에 불과한 일러스트와 아이템의 ‘이미지’를 얻기 위해 유저들은 기꺼이 돈을 쓴다. 허나 그들에게 캐릭터가 프린트된 이미지는 본질이 상실된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춤추고 노래하는 하츠네 미쿠[3]와 수많은 파생 캐릭터들이 벌이는 잔치의 초대장에 새겨진 그림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본질은 홀로그램 벽 너머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이의 틈에, 수십만 개의 픽셀과 소리 파형을 가로질러 혼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태의 작동 원리에 접근하려는 이들은 오타쿠라는 이름으로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스스로 오타쿠의 왕, 즉 ‘오타킹’이라 칭하던 일본의 게임/애니메이션 제작사인 가이낙스의 전(前) 사장을 역임했던 오카다 토시오는 오타쿠를 이렇게 정의했다.



영상의 시대에 과잉 적응한 시력과 장르를 가로지르는 고성능 레퍼런스 능력을 바탕으로 창작자의 암호를 하나도 남김없이 읽어 내려는 탐욕적인 감상자.

                                                                                                                                                                                         오카다 토시오, <오타쿠학 입문>



오타쿠들은 송출되는 작품을 멍하니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세한 곳에 이르기까지 매우 작은 정보도 빠트리지 않고,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오프닝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컷 사이 판별 불가한 이미지까지 분석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캡처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에피소드의 배후에 숨겨져 있음이 분명한 시스템 (큰 이야기), 즉 세계관에 액세스(‘암호를 남김없이 읽어 내려’)하려 한다. 오타쿠들과 그들이 액세스하고자 하는 각각의 세계-그것이 서드 임팩트 <신세기 에반게리온> 전후이든, 대 걸즈 밴드 시대 <뱅 드림! 걸즈 밴드 파티>가 도래한 현대이든, 연금술이 성행하던 평행우주의 20세기 <강철의 연금술사>이든-가 언제나 밀접하게 링크되어 있을 수 있도록 하는 매개물로서 이미지가 기능하는 것이다. 또한 이미지 그 자체와 함께 ‘환상’과 ‘소유욕’의 두 가지가 더해져 증폭되는 양상을 띤다.

환상은 서브컬처 세계관의 기억조작성이라는 특징과 같은 맥락에서 작동하며, 스스로의 기억이 아님이 명백하나 어디선가 이미 경험한 듯한 정체 모를 그리움에서 기인한다. 이는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등 가상의 세계관을 현실과 분리된 것이 아닌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거나 서로에 편입하는 존재라 여기면서 아직 오지 않은 멸망을 둘러싼 가상과 현실 간의 시차에 대한 애도일 수 있다. 오타쿠 문화는 제로연대[4]  이전 세대의 ‘이야기 소비’[5]와 제로연대 이후 세대의 ‘데이터베이스 소비’[6]라는 오타쿠의 작품 수용 태도를 횡단한다. 이를 통해 거대한 세계관과 소박한 이야기 사이를 넘나들며 암호를 풀듯 세계관을 읽어 내거나 등장인물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온전히 나의 세계라고 믿고 있던 서사가 거짓에 불과함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찾아 오기 마련이다. 환상이란 이렇듯 자기 투영이 어긋나는 순간의 슬픔과 충격이 이미지와 맞닿을 때 포착되는 또 다른 상(像) 일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소유욕의 기본 토양은 어떻게 오타쿠 문화의 기반에서 다져지는 것일까. 이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도 연결되어 있다. 다시 말해 물리적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다른 차원의 것, 즉 비물질에 대한 소유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의 도상이나 가공된 디지털 이미지를 단순히 ‘가지고 싶어서’ 재현하는 행위는 미술의 영역이 소위 ‘오타쿠질’과 만났을 때 도출되는 가장 기본적 단계의 결과물이다. 특히 포스트-세카이계 시대에 흥행했던 <동방 프로젝트>의 본질은 게임 본편보다 원작의 재현을 토대로 만들어진 2차 창작군[7]에 있었음이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이는 본디 누구의 것도 아니기에,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실체도 없는 이미지를 물질성을 지닌 지지체 위에 그려 냈을 때 온전히 내 것으로 번역할 수 있을까? 앞서 말한 이미지의 본질에 대해 과연 소유의 개념이 성립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실험의 일환으로써 회화라는 매체를 택했을 때, 그 결과는 작업과 감상자 간의 물리적 거리에 따라 성패가 나뉘는 것으로 보인다. 일정 거리에서는 어렴풋하게나마 ‘디지털 넨(燃)[8]’을 느낄 수 있으나, 조금만 가까워져도 눈 앞에는 캔버스에 물감이 얹어진 붓질만이 남게 된다. 이러한 거리 특정적 가변성은 환상이 유지되는 최소 거리를 담보함과 동시에 그 거리만큼의 공간을 하나의 世界로 치환시킨다. 한 발짝만 앞으로 나아가도 허물어져 버리는 유약한 소유욕의 세계는 주인공의 독백 한마디, 다른 등장인물과의 관계 하나에 운명이 뒤바뀌는 세카이와 닮아 있다.

붓질을 반복하며 캔버스 안에 욕망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담아 내지만 재현의 정도와 감정의 깊이와는 상관없이 결코 가질 수도, 닿을 수도 없다는 사실 앞에 맞닥뜨리게 된다. 물감의 무게(Gram)는 디지털 기억 장치의 무게, 즉 바이트(Byte)를 이길 수 없다. 형형히 빛나는 디지털 오오라, 혹은 디지털 넨의 영역을 회화적 재현이라는 과정을 통해 파인 아트로 끌고 오려는 시도를 하며 가질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소유욕을 표출한다. 허나 그럴수록 그 본질에서 멀어지고, 실체화/물질화하려 할수록 무용해지는 광경을 바라보며 느끼는 허망함은 현실이 결코 가상(혹은 그 역)을 따라잡을 수 없음에서 찾아오는 멜랑콜리와도 비슷한 감정이다. 디지털 이미지에 대항한 붓질의 거듭되는 패배 선언. 이는 제정신으로 현실을 살아갈 수 없는 오타쿠들에게 당신의 안식처는 아직 건재 하노라며 위로를 건네지만 동시에 그러한 안식에 완전히 접근할 수 없는 물리법칙을 마주하도록 그들의 슬픔을 다시 한 번 더 표상하는 양가적인 역할을 한다. 슬픔은 영원히 해소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환상’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해소되지 않은 감정과 소유할 수 없는 욕망이 늘 필요하다. 붓질은 가장 작은 단위의 실패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모든 오타쿠적 심상을 포괄할 수 있는 단초이자 단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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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카이: 세계(世界)의 일본어. 일본의 서브컬처 분야에서 작품을 분류하는 유형 중 하나인 세카이계(セカイ系)와도 연결된다. 세카이계는 ‘너와 나의 관계’라는 인간 관계의 작은 단위가 구체적 설정이나 과정 없이 ‘세계의 운명’이나 ‘세계의 종말’ 등의 추상적이면서도 거대한 문제와 직결되는 작품 유형을 가리킨다. 평론가이자 소설가 마에지마 사토시는 그의 저서 <세카이계란 무엇인가>에서, 1990년대 후반에 역사적인 히트를 기록한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오타쿠 문화에 초래한 거대한 변화와, ‘그 변화란 대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오타쿠들 스스로 답을 찾아다녔던 궤적이 바로 ‘세카이계’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세계관’과도 통용되는 용어로 쓰였다.

[2] 가챠: 뽑기 형태로 아이템을 사는 방식이자 일종의 랜덤박스. 동전을 넣고 작은 상품을 뽑는 기계인 ‘가챠퐁’의 준말이다. 1회 시도에 소정의 금액을 지불하고 랜덤하게 경품을 얻는다는 점은 도박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3] 하츠네 미쿠: 일본의 보컬 음성 합성 소프트웨어 VOCALOID2 소프트웨어이자 이미지 캐릭터. 일반적인 ‘음악 소프트웨어’의 마케팅 방식에서 벗어나, 케이스에 삽입된 캐릭터 일러스트를 사용하여 만든 동영상이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소프트웨어 자체보다 ‘미래적인 아이돌’컨셉트의 캐릭터성이 부각되어 캐릭터나 피규어, 기타 상품 등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4] 제로연대: 2000년부터 2009년을 이르는 말.

[5] 이야기 소비: 오츠카 에이지가 ‘이야기 소비론 노트’ (<정보 이야기 소비론>에 수록)에서 제시한 작품 수용법. 한 작품의 세계관을 기초로 그것과 정합성을 유지하는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려는 태도.

[6] 데이터베이스 소비: 모든 작품이 순식간에 여러 요소로 해체되어 다른 작품으로 출력된다는 뜻. 아즈마 히로키는 그의 저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ㅡ오타쿠로 본 일본 사회>에서 오타쿠들의 문화가 ‘이야기 소비’에서 ‘데이터베이스 소비’로 이행했다고 분석했다.

[7] 2차 창작군: 원작을 기반으로 한 패러디 만화나 소설, 게임 음악을 활용한 CD등에서부터 원작의 캐릭터나 세계관을 치용하고 변형, 각색하여 만든 모든 팬 메이드 창작물.
[8] 넨: 일본의 작가 토가시 요시히로가 그린 만화 <헌터x헌터>에 등장하는 일종의 초능력. 인간의 육체에서 흘러나오는 오오라, 다시 말해 일종의 기(気)를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