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졸업전시 온라인 아카이브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Fine Arts
Senior Exhibition Online Archive




2023 -0-0-0- : 매듭은 손가락으로 지어졌다
24th Senior Exhibition  FINGER TIED KNOTS



2022 사이 그늘의 날들
23th Senior Exhibition    VACANCES


2021 안녕을 위한 베타테스트
22th Senior Exhibition    BETA TEST FOR AN-NYEONG


2020 크라운 샤이니스 
21th Senior   Exhibition   CROWN SHYNESS


2019 물은 피를 씻는다
20th Senior   Exhibition   WATER WASHES BL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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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희 anton_@naver.com

Eppur si muove(And yet it moves)

그래도 그것은 움직인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구가 둥글다는 주장을 한 것에 대해 교황청에서 성서에 위반되는 내용이라며 재판을 받았고, 평생 자택 구금형을 받은 후 주장을 철회하며 이 말을 중얼거렸다는 설이 있다.

싱글채널 비디오 <Eppur si muove>는 불교의 반야심경을 전자 기타로 연주하면서 시작된다. 우리 집안은 내세를 믿지 않으면서도 매년 돌아가신 조부모님께 제사를 올린다.  2020년, 우리는 인터넷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터넷이란 이름은 1973년 TCP/IP를 정립한 빈튼 서프와 반 간이 ‘모든 컴퓨터를 하나의 통신망 안에 연결’ -International Network-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를 줄여 인터넷Internet이라고 명명하였던 데 어원을 두고 있다. 인터넷 없이 살아갈 수 없는 2020년, 그 어느 해보다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비단 나만의 경험이 아니었을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이고 죽는다는 건 무엇인가. 죽음은 모든 것의 끝 같지만, 나는 종종 누군가의 흔적으로 그들의 삶이 계속되고 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예컨대 누군가의 업적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칠 때, 그 누군가는 자신이 남긴 흔적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영상과 디지털 미디어는 썩지 않고 계속 살아간다. 관객들의 기억 속에, 그리고 거대한 하나의 통신망 안에서 흔적을 남기며 지속된다. 나 또한 계속해 기억되고 싶음이 디지털 미디어를 다루는 작업의 이유이다.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영원히 알지 못하더라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내 흔적으로 계속해 살아갈 수 있도록.








나는 수전증이 있다. ‘본태 떨림’은 가장 흔한 떨림 중 하나이며, 가족 구성원 내에 동일한 증상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나의 떨림은 아버지로부터 유전되었다. 수전증을 가진 사람에게는 언제나 그을 수 없는 선이 존재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사시던 남해의 섬 용초도는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로 사용되었던 섬이다. 용초도는 압축된 근현대사에서 배제된 존재들의 목소리로 가득 차있다. 싱글 채널 비디오 <그을 수 없는 선>에서는 3대째 내려온 유전병, 수전증을 매개로 과거의 목소리들과 현재의 대화를 시도한다. 신경증적인 작은 떨림 안에는 우리나라가 겪어야 했던 분절과 폭력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던 국군 포로들과 그들 사이에 존재했던 육체적인 폭력, 정신적으로 고문에 가까웠던 자기 증명의 행위들. 그 이후에도 섬에 다시 들어와 살아가며, 수중에 딸들에게 생리대를 사줄 돈도 없어 시아버지와 흥정을 벌여야 했던 할머니와 당시 여성들의 삶을 재조명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에 대해 성찰한다.

전쟁의 고스란히 상흔이 남겨져있는 외딴섬, 유령들만 남아있는 것 같은 장소에는 여전히 발화되지 못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섬에 갇혀 아군을 적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던 국군 포로들,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서로’간의 분절. 그들과 우리의 삶과 삶 사이에는 그을 수 없는 선이 존재한다. 섬은 시간이 지나도 누군가에게는 탈출해야만 했던 감옥이었다. 역사는 그 형태만 다를 뿐 끊임없이 반복된다. 포로수용소의 잔해와 섬에 갇혀있었던 여성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가 자유라고 믿고 있는 것 또한 또 하나의 감옥이 아닐지 질문하고자 한다.